조금만 온다던 비가 하루 종일 온다.
대학시절 자취하는 친구 방에서 전을 부쳐먹었던 기억이 난다. 친구 방에서 가장 큰 바가지에 김치를 잘라 넣고 부침가루만 첨가해 먹었던 그 김치전은 너무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점심에 시작한 전 부치기는 수업 후 그 방에 전 부친다는 소문을 듣고 들르는 같은 과 사람들에게 나눠주느라 밤까지 계속되었고 부쳐서 먹고 부쳐서 먹고를 반복했다. 지금 생각하면 입꼬리가 올라가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갑자기 그 시절의 전이 먹고 싶어졌다. 근사한 재료가 들어가지 않아도 부침가루 하나만으로도 맛있었던 전을 부쳐 집에 있는 소주 한 잔 해야겠다.
재료의 핵심 부침가루
난 친구들과 전을 부쳐먹던날 전에 부침가루를 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밀가루를 이용해 전을 해주셨었다. 전 재료를 사러 가서 친구가 밀가루 대신 부침가루를 챙기며 "이거 하나면 다 돼."라고 말할 때도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김치랑 부침가루만 들어갔는데 밀가루를 넣어 오징어까지 첨가한 엄마가 만든 전보다도 더 맛있었다.
결혼을 하고 살림을 시작하면서 내 전의 주 재료는 부침가루였다. 솜씨가 없어도 전이 맛있어지는 마법의 가루다.
내가 계량을 안하는 몇 안 되는 음식 중 하나인 전은 부침가루와 물만 섞으면 된다. 되직한 느낌보다는 약간 묽다 싶을 정도로 농도를 맞추면 되는데 어려우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제품 뒷면에 상세히 나와있다. 예를 들어 2장의 전을 부치려고 한다면 종이컵으로 1컵 정도의 부침가루에 종이컵으로 약 3/4컵을 부으면 적당량이다.
특별한 브랜드를 선호하지 않지만 마트에 가면 가장 많은 게 오뚜기 부침가루와 백설 부침가루이다. 백설이 세일해서 싼 가격으로 파는 게 아니라면 난 주로 오뚜기 제품을 사 온다. 솔직히 맛은 비슷하지만 방송에 나온 오뚜기 회장님 인상이 너무 선하셔서 부침가루를 포함하여 다른 제품도 비교 제품들이 있을 때 웬만하면 오뚜기를 고른다. 내가 원래 선해 보이는 사람을 무조건 믿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부침가루를 구입했으면 전의 50%는 했다고 할 수 있다.
몸에 좋은 부추전
몇년 전 주말 농장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부추를 심었는데 뿌리만 남기고 윗부분을 자르고 먹으면 얼마 안 돼서 다시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라 있었다. 너무 신기해하고 있는데 지나가시던 분께서 부추는 한 번 심으면 계속 잘라먹을 수 있다며 그 생명력에 대해서 대단하다고 말씀하셨다.
그 만큼 부추는 몸에 좋다. 비타민 A, 비타민 C는 물론 해독 작용과 혈액순환에도 좋다고 한다. 사시사철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이 재료를 쉽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부추전이다.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가 부추전을 한 적이 있는데 부추를 아주 잘게 썰어서 부추전을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전에는 약간 길게 해서 만들었는데 박나래 방식을 따라 해 보니 먹을 때 더 편하고 좋았다. 그래서 부추전을 만들 때 부추는 잘게 썰어서 만든다.
부침가루에 물과 잘게 썬 부추와 색감을 위한 고추 하나 잘게 다져 넣으면 초간단 부추전 끝.
애호박만 채썰면 끝나는 애호박전
결혼해서 시댁에 갔더니 애호박을 채쳐서 전을 해주셨다. 난 원래 호박전이란 동그랗게 자른 애호박을 전으로 해먹는 방법만 알고 있었는데 어머님이 해주신 그 애호박전이 신기하면서도 맛있었다.
그 후부터 우리집 애호박전은 부침가루에 채 썬 애호박을 넣고 당근을 조금만 채쳐서 넣어주면 된다. 물론 애호박만 넣어도 된다. 백종원님이 나와서 건새우를 갈아서 넣는 걸 따라 해 본 적이 있는데 가족들이 좋아하는 식감이 아니어서 그 후부터 원래대로 호박만 넣고 만든다.
이거 역시 초간단 전이다.
김치가 다 알아서 해주는 김치전
이거야먈로 정말 쉽게 맛을 내는 전이다. 김치 자체에 많은 양념이 되어있기에 김치만 맛있다면 무조건 꿀맛은 보장이다.
김치 속이 들어가면 전 자체가 지저분해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속을 털어내고 잘게 잘라 부침가루와 섞으면 끝이다. 부침가루에도 간이 되어있는데 김치의 간과 만나 약간 짭짤한 듯한 전이 된다. 김치전은 아이들 밥반찬으로도 좋고 맥주 안주로도 그만이다.
비오는 날 전 좀 먹으려고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너무 많이 했나 보다. 이럴 때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근처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 시절 대학 친구들이 그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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